
꽤 오래 전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 근처에 위치한 시립 도서관에서, 삼중당 문고 판으로 읽었었다. '삼중당 문고'. 라는 단어는 아마 장정일을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실히 낯익은 문장의 단어일진대, 폭포수와도 같은 문학적 상상력을 형성케 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원천이자 그의 작품 중의 한 주제로서 전면으로 인용되었던, 그 문고판 시리즈로 출간된 판본으로 읽은 것이다.
번역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깨알같은 글씨의 활판으로 인쇄된 글자들이 종이에 촘촘히 박힌것들을 한줄 한줄 읽으며,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호울든 코우필드' 의 세계관과 사상에 동화(同化) 되어감을 책장을 넘겨가는 와중에 체감할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그를 읽었고, 그를 읽으며, 그를 느낄수 있었고, 내 안에 그와 같은 성향이 숨어 있었음을 발견(發見)한 것이다.
결국 완독을 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에는, 초자아의 장벽에 옴짝달싹 못하였던 본능의 감수성이 울리는 메아리를 들었을때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그 감정의 감흥, 즉 '감동(感同)'을 느낄수 있었다. ('감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곧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느낌(感)이 동일하(同)다'는 것, 즉 느낌이 통한다는 것이 아니더냐. 고로 나와 코우필드는 서로 '통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현대 자본주의 문명사회의 폐해와 그 속에서 숨쉬고 있는 인간의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 이라는 평은 이제 주례사성 비평이 되었을 정도로 흔한 말이고, 나 역시 여기에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현(現) 서울 법대 교수로 재직하셨던 안경환 扮의 문학관에 대한 기록인 [법과 문학사이](까치)에선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루면서 위의 '시체비평문'의 개념을 넘어서 다르게 텍스트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캘리포니아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화자의 고백으로 일관하는 소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345 Page).
이 말은 즉슨 이 소설이 그저 사춘기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의 "왔다갔다 하는 이야기(347 Page)"라는 말인데, 아무리 되집어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지만 그의 이러한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으로 전제를 할때에, 우리는 다음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정신질환자' 들이다."
사족.
[호밀밭의 파수꾼] 국내 번역본은 여러 판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시리즈로 간행된 '민음사 판본' 이 제일 믿음직스럽다.
그 근거로는 번역가인 공경희 扮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한 것인데 나는 그(혹은 그녀)가 우리말로 옮긴 사이먼 윈체스터의 [교수와 광인](세종서적)을 읽고 번역가로서의 자질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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