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바야흐로 중,고등학교 시절. 당시만 해도 만화대여점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90년대 어느 무렵의 이야기이니 핸드폰도 거의 전무하던 시절, 동네나 학교 근처의 만화대여점은 종종 우리들의 약속장소로 애용되곤 했다.
최근 들어 만화를 보며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대중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만화방이라는 공간이 지금처럼 인테리어가 세련된 공간은 아니었다. 다양한 먹거리는 당연히 없었고 말이다.
그저 만화책과 하이틴 로맨스로 불리우는 소설들이 꽂혀있던 책장들과, 그리고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소파 몇 개가 전부인 공간이었다.
8,90년대에는 순정만화 르네상스라고 명명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명작이 쏟아져 나왔는데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김진의 바람의 나라,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 천계영의 오디션, 황미나의 아뉴스데이, 불새의 늪, 굿바이 미스터 블랙 등 단순히 여학생들이나 보는 순정만화로 평가절하하기엔 아까운 작품이 부지기수였다.
그 중에서도 나의 최애작을 꼽으라면 강경옥 작가의 별빛속에라는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아뉴스데이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이런 명작들 중에서 최애작을 꼽다니...)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결말을 향해가는 세계관의 방대함이 어벤져스 시리즈의 뺨을 후려치고도 남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아마도 80년대 후반부터 단행본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대여점에서 볼 수 있었던 초판본의 발행일자는 나오지 않아 정확한 정보는 제공해 드릴 수 없다. 오호, 통재라...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고등학생인 신혜. 그녀는 우주라는 공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아버지와 함께 별을 보는게 취미인 소녀이다.ㅡ#만ㅇ소만
그러던 어느날 초능력자라는 사라와 그녀를 보호하는 레디온이 신혜의 집에 묵게 되는데... 사실 사라라는 소녀는 카피온이라는 우주 행성의 제1왕녀 후보이며, 지구에서 자란 1왕녀에 대한 반대세력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자 하는 레디온. 이 두 사람이 사실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혜.
그렇지만 사라에게는 어느 시기가 되면 나타나야 하는 왕녀로서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인간으로 알았던 신혜에게 주기적으로 파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행성 카피온의 제1왕녀 시이라젠느는 신혜였다는 사실 밝혀진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레디온은 지구에서 신혜로서 살아왔던 시이라젠느를 데리고 카피온으로 향한다.
대략 이렇게 시작하는 별빛속에는 광할한 우주, 초능력과 과학기술의 대립, 철저한 계급사회, 왕족간의 세력다툼 등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방대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물론 시이라젠느를 둘러싼 레디온과 왕족 아르만과의 삼각 로맨스도 존재한다. 잊지 말자. 이 작품은 근본이 순정만화라는 사실을...
사실 삼각 로맨스라기엔 레디온의 일방적인 판정승이긴 하지만 서브 남주로만 보기에는 아르만도 너무 멋있다는게 함정!
단행본으로 한 권씩 출간되던 책이라 대체 다음 권은 언제 나오는 거야, 하며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의 말미에 레디온이 죽음을 맞이하는 바람에 도대체 우리 레디온은 왜 죽이신 거예요, 작가님, 벌 받으실 거예요, 라며 출판사를 통해 항의편지까지 보냈었더랬다. 이제 와서 작가님께 드리는 사죄의 말씀... ^^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레디온의 죽음은 가히 충격적이었단 말이지.

작품 후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스토리는 고등학생 때 구상했다. 결말까지도...
작가의 말을 읽고 시이라젠느 이전의 신혜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스토리를 고등학생 때 구상했다고? 이 작가 최소 천재 아닌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 스토리와 세계관의 방대함이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머릿속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총8권의 단행본으로 복간되었다가 아쉽게도 현재는 다시 절판이 되었지만 혹여라도 만화방을 찾을 계획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물론 나의 경우 이 작품은 전권 소장하고 있다는 자랑질을 덧붙이도록 하자. 만화책을 소장한다고 비웃지 마시라. 이 작품은 소장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구!!!
끝으로 이 작품을 접하고 재미있게 보셨다면 같은 작가의 17세의 나레이션이라는 작품도 강력 추천한다. 정말 심리묘사에 탁월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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